600년 은행나무의 가을놀이

2026년 10월의 어느 날, 세종시 임난수은행나무 역사공원에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참여하는 체험마당과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들은 역사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여러 프로그램을 차례로 경험했다.
행사에서는 은행알 색칠하기와 목책 만들기, 목판 인출을 비롯해 행단 스토리 승람도 놀이와 활쏘기 대회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가족 단위로 힘을 모으거나 각자 만든 결과물을 살펴보며 가을날의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들이 체험 도구를 진지하게 다루는 동안 어른들은 곁에서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놀이에 참여했다.
천연기념물 임난수은행나무
행사가 열린 역사공원에는 수령 60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한 그루는 수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암나무다. 두 나무는 고려의 충신 임난수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 구분 | 나무 높이 | 가슴높이 둘레 |
|---|---|---|
| 수나무 | 20m | 6.9m |
| 암나무 | 19m | 5.4m |
수나무는 굵고 힘찬 줄기와 넓게 뻗은 가지를 드러낸다. 그 옆의 암나무 역시 긴 세월을 견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규모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가까이 서 있는 풍경은 역사공원의 중심을 이룬다.
두 은행나무는 2001년 ‘양화리 은행나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기념물에 지정됐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로 변경됐으며, 2022년 천연기념물로 승격되면서 명칭도 ‘세종 임난수은행나무’로 바뀌었다.
지방 기념물로 보호받던 두 고목은 2022년 천연기념물로 승격되며 역사적 가치와 오랜 생명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행사 참가자들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놀이와 체험을 이어가며 공원의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은행나무 뒤편의 숭모각
은행나무 뒤편에는 숭모각이 자리한다. 숭모각은 고려 말 무신 임난수와 부안 임씨의 시조 임팔급을 비롯한 14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임난수 장군은 1342년에 태어나 1407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 말 여러 고위 관직을 거쳤으며,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전해진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관직을 버리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의 금강 변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임난수가 이곳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6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가 고려 왕조를 향해 절을 했다고 전해지는 전월산 부왕봉과 상려암도 관련 유적으로 남아 있다.
과거 사당에는 탐라 정벌 당시의 임난수 장군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그림에는 외적에게 잘린 손을 화살통에 넣어 메고 싸우는 장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종은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해 ‘임씨가묘’라고 쓴 현판과 토지를 하사했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임씨 가묘였던 기호서사가 철거된 뒤, 1923년 이곳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1957년 서울 시공관에서 열린 전국 부안 임씨 총회를 거쳐 숭모각 복원이 추진됐고, 1964년 복원이 마무리됐다. 숭모각 내부에는 임팔급을 포함한 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가족이 겨룬 행단 승람도
행단 스토리 승람도 놀이는 윷놀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족 구성원이 한 팀을 이루고 두 팀이 서로 겨루는 형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굴려 네 개의 말을 이동시키고, 상대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순서를 살폈다.
놀이의 출발점은 부안, 마지막 도착점은 세종으로 설정됐다. 이는 임난수 장군이 부안 임씨라는 점을 반영한 구성이다. 가족들은 주사위 결과에 따라 말을 옮기며 경기에 집중했고, 말의 이동이 엇갈릴 때마다 놀이판 주변의 분위기도 활기를 띠었다.
부안에서 세종으로 이어지는 놀이판은 임난수 장군과 지역의 관계를 가족 놀이의 흐름 안에 담아냈다. 어린이와 어른은 같은 규칙에 따라 차례를 기다리고, 목적지를 향해 네 개의 말을 함께 움직였다.
나무로 책과 인쇄를 배우다
목책 만들기는 종이가 없던 시절 나무에 글을 써 책으로 만들던 방식을 직접 경험하는 체험이었다. 목책을 처음 접한 어린이들은 재료의 형태와 만드는 순서를 살피며 작업을 이어갔다. 종이책에 익숙한 아이들이 나무로 만든 책의 구조를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목판 인출 체험에서는 나무로 만든 목판을 이용해 인쇄본을 찍었다. 참가한 아이들은 목판의 무늬와 글자가 종이에 옮겨지는 과정을 지켜본 뒤 자신이 완성한 인쇄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같은 목판을 이용해도 직접 누르고 찍어낸 결과물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아이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두 프로그램은 나무를 바탕으로 기록물을 만들던 방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다. 목책 만들기가 나무에 글을 남겨 책을 구성하는 체험이라면, 목판 인출은 목판의 내용을 종이에 찍어내는 과정을 다뤘다.
작은 은행알에 담은 그림
은행 열매를 활용한 체험도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작은 은행알에 색을 칠하고 글씨나 그림을 새겼다. 작업 면적이 작아 손을 세밀하게 움직여야 했으며, 어린이들은 은행알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정한 글자와 무늬를 표현했다.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적는 아이와 여러 색을 골라 그림을 완성하는 아이의 모습이 체험 공간 곳곳에서 이어졌다. 완성된 은행알에는 각기 다른 글과 그림이 남았다. 공원의 상징인 은행나무 열매가 어린이들의 손을 거쳐 작은 체험 결과물로 바뀌었다.
열매로 컵을 쓰러뜨린 활쏘기
꼬마 활쏘기 놀이마당에서는 일반적인 화살이 날아가는 대신, 화살 앞부분에 끼운 열매를 쏘아 포개 놓은 컵을 넘어뜨렸다. 놀이에 사용된 것은 측백나무 열매와 은행나무 열매였다.
아이들은 컵을 향해 활의 방향을 잡고 열매를 쏘았다. 열매가 컵에 닿아 컵이 쓰러지면 주변 참가자들이 결과를 함께 확인했다. 실제 활쏘기의 동작을 놀이 방식으로 구성해 어린이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한 활쏘기 대회
행사의 마지막에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하지 않고 참가자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나섰다. 각 참가자에게는 네 발의 기회가 주어졌고, 과녁 점수를 합산해 고득점 순으로 순위를 정했다.
활을 든 참가자들은 과녁을 바라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이도 어른도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에는 표정이 진지해졌다. 차례를 기다리는 가족들은 경기를 지켜봤고, 화살이 과녁에 꽂힐 때마다 점수를 확인했다.
대회에서는 1위부터 3위까지 순위를 가려 시상했다. 입상자들은 준비된 상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선택했다. 가족 놀이로 시작한 행사는 모든 세대가 함께 겨룬 활쏘기 대회로 마무리됐다.
역사공원에 이어진 가족의 웃음
행사에 참여한 한 가족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서 아이와 체험과 놀이를 함께하며 가을의 한때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놀이를 마친 가족들의 미소와 어린이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에서는 현장의 즐거운 분위기가 드러났다.
이날 임난수은행나무 역사공원에서는 천연기념물과 숭모각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과 가족 체험이 한 공간에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은행알에 색을 입히고, 목책을 만들고, 목판으로 인쇄했으며, 승람도와 활쏘기에도 참여했다.
600년을 넘긴 은행나무 아래에서 아이와 어른은 역사를 살피고 전통 놀이를 함께 즐겼다. 가을이 무르익은 공원에는 가족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서로의 체험을 지켜보는 모습이 이어졌으며, 행사는 세대가 함께 시간을 나누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