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 내려앉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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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에 내려앉은 가을

전통 장류와 자연이 만나는 공간

세종의 뒤웅박고을은 전통 장류를 현대에 널리 알리고 건강한 식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조성된 전통 장류 테마공원이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으로 대표되는 장 문화뿐만 아니라 옛 생활 도구와 민속 풍습,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풍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가을의 뒤웅박고을에서는 장독대와 구절초, 단풍이 한데 어우러진다. 넓게 펼쳐진 장독 사이로 흰 꽃이 고개를 내밀고, 산책로 주변의 나무는 서서히 가을빛으로 물든다.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공간의 성격이 계절 풍경 속에서 한층 또렷하게 드러난다.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네 개의 길

주차장에서 뒤웅박고을로 들어가는 오솔길은 주변의 특징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천장이 다래와 으름 넝쿨로 덮인 구간은 다래넝쿨길이며, 시를 새긴 바위가 놓인 곳은 시비거리다. 십이지신상이 길가에 늘어선 십이지신거리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야생화거리도 이어진다.

넝쿨 아래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쪽으로 향한다. 으름넝쿨에는 열매가 매달리고, 길가에는 쥐와 소, 범, 토끼, 용을 비롯한 십이지신 형상물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조형물과 식물이 이어지는 길은 뒤웅박고을의 중심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전통과 자연을 함께 살펴보는 도입부 역할을 한다.

생활의 지혜가 담긴 뒤웅박

뒤웅박은 박을 반으로 쪼개지 않고 꼭지 가까이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낸 뒤, 속을 깨끗이 파내 만든 생활 도구다. 투박하고 수수한 형태지만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알뜰하게 활용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뒤웅박은 습기를 조절하는 성질을 활용해 여름철 밥을 담아 두는 데 쓰였으며, 씨앗을 갈무리하거나 달걀을 보관하는 그릇으로도 이용됐다. 하나의 박을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자연을 소중히 여기던 옛 살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공원의 이름 역시 이러한 전통 생활문화와 맞닿아 있다.

해담뜰을 채운 구절초

다래와 으름 넝쿨이 이어진 길을 지나면 해담뜰이 나온다. 해담뜰 옆에는 엄마 기린과 아기 기린을 표현한 조형물이 나란히 서 있다. 장독 사이에서는 구절초가 피어나 묵직한 항아리와 작고 밝은 꽃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구절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줄기의 마디와 관련됐다는 설과 채취 시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 마디와 관련한 설은 음력 5월 단오 무렵 줄기가 다섯 마디였다가 음력 9월 9일경 아홉 마디가 된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 채취 시기와 관련한 설은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에 꺾는 것이 좋다고 여긴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가을철 해담뜰에서는 구절초가 장독 사이를 채우며 산책로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단정하게 놓인 장독과 자연스럽게 번진 꽃이 어우러져 전통 장류 공간의 차분한 인상을 전한다.

뒤웅박고을을 상징하는 장독대

해담뜰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뒤웅박고을을 대표하는 장독대가 펼쳐진다. 장독대는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 생활에 필요한 기초 식품을 담아 보관하던 장소다. 과거에는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정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제액초복을 바라며 터주를 모시거나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장맛의 변질을 일으킬 수 있는 해충의 접근을 줄이기 위해 단을 쌓고 바닥에 잔돌을 까는 방식도 사용됐다. 햇볕과 바람이 드는 자리에 장독을 놓고 보살피던 생활문화가 공간 구성에 반영된 셈이다.

가을의 장독대에서는 검고 짙은 항아리와 흰 구절초가 대비를 이루며 뒤웅박고을만의 풍경을 완성한다.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면 또 다른 항아리 주변으로 핀 구절초가 방문객을 맞는다. 장독의 둥근 선과 꽃의 가는 줄기가 겹쳐지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역의 차이를 보여주는 팔도장독대

팔도장독대로 향하는 길 주변에는 구절초 사이로 여러 조각상이 놓여 있다. 판소리를 표현한 조각상 등 전통문화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산책 동선을 따라 이어진다.

팔도장독대에서는 제주도와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등 지역별 특색이 담긴 장독대를 살펴볼 수 있다. 장을 담그고 보관하는 문화가 지역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장독의 형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근 정자에 오르면 장독대와 구절초, 주변 산책로가 펼쳐진 풍경을 돌아볼 수 있다. 여러 지역의 장독을 가까이에서 살펴본 뒤 한층 높은 곳에서 전체 공간을 바라보면 뒤웅박고을의 구성도 자연스럽게 파악된다.

주상절리대와 장류풍경원

팔도장독대를 지나면 구절초꽃 위로 높이 솟은 주상절리대가 나타난다. 육중한 돌기둥과 가볍게 흔들리는 꽃이 대비를 이루며 산책길에 색다른 장면을 더한다.

이어지는 장류풍경원에는 전통 혼례와 씨름, 새참 등 우리 민속과 풍습을 보여주는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새참을 내가는 어머니와 곁을 따르는 강아지, 주전자를 들고 따라가는 아이의 모습도 조형물로 표현돼 있다. 일과 휴식이 이어지던 옛 농촌 생활의 한 장면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뒤웅박고을을 한 바퀴 돌아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구절초 사이에서 절구질하는 어머니를 표현한 조각상이 나타나며, 아래쪽에서도 장독대와 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세종전통장류박물관의 역할

내려가는 길 왼편에는 세종전통장류박물관이 자리한다. 2013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 장류 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장과 관련된 문화 자산을 보존해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설립됐다.

세종전통장류박물관은 세종시 제1호 제1종 전문박물관이다. 내부에서는 장의 역사와 한국의 발효 음식 문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장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콩 종자와 과학적인 저장 용기 등도 만날 수 있다. 야외 장독대에서 본 전통 장류 문화를 박물관 전시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공간이다.

가을 산책과 이용 정보

뒤웅박고을에는 한식당과 카페가 운영된다. 식사나 차를 즐기지 않더라도 공간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돼 있어 장독대와 박물관 주변을 따라 산책할 수 있다.

가을에는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구절초와 단풍, 장독대가 차분한 풍경을 이룬다. 오솔길에서 시작해 해담뜰과 팔도장독대, 주상절리대, 장류풍경원, 세종전통장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걸으면 전통 생활문화와 장류의 역사, 자연의 계절 변화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뒤웅박고을의 정기 휴무일은 매주 화요일이다. 방문 전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통 장류의 보존 가치와 가을 자연의 정취를 함께 보여주는 이곳은 가족과 함께 우리 식문화와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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